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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t by Numbers - Cat #01

레벨업 시키기

by 황혜정 2020. 10. 20.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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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이것저것 배우는 것에 꽤나 욕심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분야에 관심 있어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즐기는 지금의 성격이 형성된 것 같다.

 

 


 

 

제법 이른 시기부터 이것저것 배우기 시작했었다.

욕심이 참 가득했었단다.

아무것도 모르는 3살 꼬마애가 이웃 언니가 유치원을 다닌다기에, 엄마에게 떼쓰고 떼써서 겨우 들어간 유치원.

너무나 다니고 싶어서 떼를 쓰니까 마지못해 유치원에 보내 놓고, 엄마는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옆집 언니 따라서 오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그냥 편하게 놀다가 오게 해 달라고.

 

하지만, 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이틀 차.

오전 즈음 엄마는 친구분들과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창밖에서 커다랗게 울어 재끼는 목소리를 들으셨다고 한다.

나였다.

동네가 떠나가라 하고 창밖에서 울면서 집에 오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서둘러 집 밖으로 나가서, 울고 있는 나를 보며 어떤 영문인지 몰라하셨다고 한다. 아침에 분명 유치원에 잘 데려다줬는데 말이다.

엄마의 말에 의하자면, 내가 유치원이 가기 싫다고 울며 떼를 썼다고 하셨다.

엄마가 나에게 왜 가기 싫으냐고 물어보시니, 나의 말인 즉, 선생님이 옆에 있는 언니 오빠에게는 다 숙제를 내주는데 나에게만 안 내준다고, 그래서 유치원이 가기 싫다며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참 기가 막힌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생각도 안나는 어린 시절부터 이런저런 것들을 배우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는 기독교이다.

기도를 하면 이루어진다는 걸 어렸을 때부터 체득적으로 배워왔던 것 같다.

4살 때부터 피아노 학원을 다녔었는데, 그때부터 매일매일 밥 먹을 때마다, '5살 생일 때는 아빠가 꼭 피아노를 사주게 해 주세요'라고 하루 세 끼를 먹을 때마다 365일 이상 매일매일 기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섯 살인가 여섯 살 즘의 기억이다.

같은 동 아파트 옆 라인 가정집에 한자/서예학원이 있었다.

지금 그분의 연세를 생각해보자면 아마도 그 당시 이미 60이 넘으셨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곳에서도 나이가 너무 어리기에 천자문만 배우는 게 보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말씀에 의하면 내가 역시나 언니 오빠들 따라서 서예도 배우고 싶다고 마구 떼를 썼다고 한다.

이 곳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 어렴풋이 있는데, 선생님이 잠시 화장실 가신 사이에 잠깐 자는 척 엎드렸다가 그대로 잠들어서 반수면 상태로 엄마 등에 업혀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미술은 새로 이사 온 곳에서 바로 윗 가정집에 미술학원이 있어서 일곱 살부터 시작했었다.

다양하게 많은 것들을 배웠던 것 같다. 수채화, 소묘, 댓생, 입시 구성 등등.

 

내 첫 붓과 관련된 기억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래 봤자 3천 원-5천 원 정도였겠지만, 그 당시 검은 몸통에 붓 끝이 하얀색이었던 라인이 나름 '명품'붓이었다. 드디어 15호의 '명품' 둥근 붓 하나를 산 후, 학원에서 나뭇잎 붓터치를 할 때 느껴봤던 그 쫀쫀한 붓터치의 촉감.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올라가게 되면 (아마도 4학년 정도이지 않았을까 싶다) 배웠었던 포스터 칼라 그림 그리기. 90년대의 입시미술의 한 부류라 지금은 잘 안 하는 듯 하지만, '입시 구성'으로 찾아보니 검색이 그나마 되기는 한다. 한동안 안 썼던 색이라면, 물감이 뚜껑에 묻은 채 굳어져서 뚜껑을 열기가 정말 힘들었다. 아마도 그 당시 기억으로는, 지금 언더아머를 입기 위해 힘을 들이는 것만큼이나 육체적인 힘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뚜껑을 열려고 애쓰던 기억이 선하다. 뚜껑을 힘들게 열고나면, 펑 소리와 함께 알싸한 포스터 칼라 물감만의 냄새가 코 끝을 찌르며 축하의 인사를 해주곤 했었는데 말이다.

 

 


 

 

여튼, 나이가 들며 바쁘기 시작하며 자연스레 이러한 취미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여유 시간이야 있었지만 그 시간에는 다른 새로운 것들을 하느라 바빴었지, 예전에 배웠던 -이미 재미를 느껴봤었던- 것들에게까지 관심사가 갈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30대가 되고, 그 30대 안에서도 한 해 한 해가 지남에 따라서 어렸을 옛 기억들이 그리워졌다고 하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랄까.

음악을 다시 하고 싶어 졌고,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어 졌다. 

 

 

 

'혼자서 다시 그림을 배우지는 못하잖아'라는 핑계를 대며 기회를 미뤄왔던 게 수 차례.

우연찮게도 구글 광고에서 'Paint by Numbers'라는 광고가 떠올랐다. 

대체 왜? 

구글 광고는 기존 검색 결과를 바탕으로 비슷한 항목을 추천해주는 알고리즘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여튼, 그렇게 시작한 게 이 Paint by Numbers.

 

 


 

나는 애묘가다.

온라인 집사이자, 고양이 덕후이다.

그래서 고른 그림.

이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

 

- 고양이 덕후인 나를 위해 선물한 고양이 그림 그리기 -

 

 

언제 주문을 했었는지 잊어버릴 즈음 도착하였다.

기대감에 개봉하였다.

아.. 어렸을 적 눈이 빠지게 했었던 '월리를 찾아라'보다 더 심각하게 작은 숫자들이 빼곡하게 40x50cm 캔버스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 '월리를 찾아라'보다 더 심각한 숫자 찾기 놀이 -

 

 

그림은 구역이 있고 구역마다 번호가 있는데, 각 번호별 색깔이 아래의 그림처럼 정갈하게 잘 정리되어 들어있다.

 

- 어른을 위한 색칠놀이용 물감 -

 

사실 너무나 빼곡한 숫자에 겁먹어 한 이주일은 쳐다도 안 봤다.

 

 

 

 

 

그러다가 오늘 갑자기 시작하게 되었다.

해야 할 것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기 싫은 것을 미루기 위한 핑계로 말이다.

 

 

뚜껑을 열자마자 나는 묘한 유화물감의 냄새.

이젤이 없기에 보면대에 그림을 올리자, 제법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붉은 계열의 숫자 '1번'.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1번을 완성하고 나니,

어느덧 한 시간 오십 분이란 시간이 훌쩍 가있었다. 

그렇게 완성한 1번의 모습이 바로 아래의 사진. 

 

- 고양이는 1번과 함께 -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나름 즐거웠다.

좋아하는 오디오북을 들으며 '숨바꼭질'을 하자니, 잡념들이 싹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24번까지의 완성을 위하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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