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한국어

일상 나누기

by 황혜정 2020. 10. 18. 21:38

본문

우연찮게 유튜브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보았다. 총 3부작으로 기획된 한국어에 대한 KBS 다큐멘터리였다.

"위대한 여정, 한국어"라는 2004년도 작품이었다.

※ [위대한 여정, 한국어] 3부작 

   1부 “말의 탄생 - 산과 바다를 넘어” https://youtu.be/8cj8kni_wWw

    2부 “말은 민족을 낳고” https://youtu.be/PWw8bgPFwY4

    3부 “말의 길 - 한국어의 선택” https://youtu.be/GwGfa3eQISw

 

 

1부에서는 한국어에 대한 기원을 추적하였고,

2부에서는 일본어와 한국어의 기원을 조사하였고,

3부에서는 한국어의 현재 및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이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두 개의 이야기보따리를 함께 나누고 싶었다. 만일 누군가가 옆에 있었다면 말이다.

 


 

그중 첫째는 바로 2부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농경업과 청동기 문화를 가지고 한반도로부터 일본으로 내려갔다는 사람들.

기존에 일본 열도에서 지내고 있던 사람들인 '죠몬(繩文)'인들과 구분 짓기 위해, '야요이(彌生)'인으로 불렸다는 한반도의 사람들.

2부에서는 바로 그들이 주인공이었다.

 

 

수렵과 채집만으로 생활을 영위하던 '죠몬(繩文)'인들과 대조되게도,

식량을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는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청동기와 함께 점점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는 '야요이(彌生)'인들,

그리고 그들의 농경문화와 함께 같이 전파되었던 그들이 사용했던 한반도의 '언어'.

이 다큐멘터리의 2부의 핵심 내용은 이 것이었다.

 

 

요약하자면, '같은 뿌리에서 시작된 말인데, 왜 현대 한국어와 일본어는 이렇게 전혀 달라졌을까?'이다.

그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농경문화를 가지고 일본으로 내려가 고대 일본어의 시조가 되었던 말의 원형은, 훗날 고구려어로 이어져 내려왔다던 북방의 고대 한국어였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현대 한국어는, 신라가 통일된 이후로 정착된 신라 사람들의 말이었다.

즉, 삼국 시대의 말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다큐멘터리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물론, 삼국 시대의 말은 그 뿌리가 같았다고 한다. 그렇기에 고대 비문을 보게 되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현대 한국어의 어순인 'S + O + V'의 특징이 삼한의 비문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다만, 그 뿌리는 같았지만 세 나라가 서로 흩어져 각각의 문화를 이룸에 있어서 7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에, 삼국 간의 어휘는 공통된 점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잠시 다큐멘터리에서 고구려 언어와 일본어가 같은 뿌리라고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로 제시한 것들 중에서 기억나는 것을 이야기해보자면, '조사'이다.

즉 숫자를 읽는 법이었다.

실제로 고구려의 숫자 읽는 법 중 서너 가지가 일본어의 숫자 읽기와 거의 유사하였다.

학자들에 의하면, 조사의 유사성은 언어의 동질성을 나타내는 척도 중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라고 하였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신라가 통일을 하지 않고 고구려가 통일을 하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잠시 하여본다.

역사적으로 여러 아픈 사실들을 제외하고, 언어학적으로만 본다면 현재 한국인과 일본인의 의사소통이 조금 더 원활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서로 비슷하게 알아듣듯이 말이다.

 


 

두 번째 생각 꾸러미는, 3부와 관련되어 있다.

 

 

한국에는 외래어가 일상 언어의 일부가 이미 되어 버렸다.

특히 신조어 같은 경우는 영어 혹은 외국어를 발음 그대로 차용해서 쓰기에, 외래어의 숫자는 더욱 비중을 늘려나가고 있다.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을 한 문장으로 적어본다면,

'나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하는 윈도우즈 컴퓨터에서 인터넷 브라우저로 티스토리에 접속한 후, 블로그에 글을 적으며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도 같이 업로드하고 있다.' 정도가 될 것 같다.

21 단어의 한 문장에서, 무려 10 단어가 외래어이다.

 

 

문장을 구성할 때는, 동사와 명사를 문장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으뜸 품사로 볼 수 있다.

위의 한 문장을 볼 때,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명사는 대부분이 외래어인 것을 알 수 있다.

외래어인 명사들을 제외하면, 문장에서 무슨 말을 전달하려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심지어 더욱 문제인 것은, 이러한 외래어들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 조차 없는 것이다.

 

 

내가 3년 전쯤 잠시 한국을 갔을 때의 이야기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대기하며 문득 고개를 들어 반대편을 보는데, 대략 20층 높이로 되어 보이는 어떤 상가 건물 한 동이 눈에 들어왔다.

맙소사.

전부 외국어였다.

학원의 이름을 외국어로 하면, 한국어로 지은 이름의 학원들과 비교해서 조금 더 잘 가르치는 것처럼 보이나?

병원의 이름을 외국어로 하면, 한국어로 지은 이름의 병원들과 비교해서 조금 더 잘 치료하는 것처럼 보이나?

한국어에서 외래어 사용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외국어를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날의 경험은 사실 적잖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관념들은 항상 있어 왔다.

'영어는 고급스럽고 한국어는 촌스럽다'라는 관념들 말이다.

나도 내가 10대였을 때는 영어로 된 이름들을 보았었을 때, 뭔가 조금 더 고급스러워 보였다고 느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20대 그리고 30대가 되어보니, 사실 한국어로 된 이름들이 너무 예쁘고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특히나, 한자어 한국어보다는 순한글로 이루어진 이름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정체불명의 여러 언어를 섞은 아파트 이름을 보는 것보다, 순한글로 지어진 아파트 이름이 더 고풍스러워 보이는 것은 나만이 느끼는 것인가?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조차 정확한 뜻도 모르는 영어 혹은 그 외의 외국어를 사명으로 가진 회사를 보는 것보다, 투박하지만 네모난 간판 위에 한국어로 적힌 사명을 보는 것이 더 신뢰롭고 우직해 보이는 것은 나만이 느끼는 것인가?

 

 

다큐멘터리의 3부에서 프랑스의 '프랑스어 사용법(투봉법)'이 예제로 소개되었다.

간략히 말하자면, '프랑스어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라고 소개하면 자연스러울 것 같다.

제품에서 프랑스어로 안내문이 없는 것을 법적으로 제재하는 것이다.

 

 

자국어 사용에 대한 증진 및 보호를 위해 제도적인 법안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대중들의 인식도 놀라웠다.

프랑스어 받아쓰기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받아쓰기 대회에서 나올 법한 내용들을 책으로 판매하는데, 이러한 책도 큰 출판산업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말과 글이 사라지면 그 문화도 사라진다고 한다.

방송에서는 여러 언어의 소멸과 함께 그 언어들의 마지막 사용자들의 사진이 잠깐씩 나왔었다.

의미가 깊었다.

물론 가까운 미래에 한국어는 사라지지 않겠지만, 이렇게 외래어와 외국어가 난립되는 상황이 오래 유지된다면, 우리나라 고유의 정체성과 문화가 사라지는 건 시간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다.

 

 

방송에서 나왔던 것처럼, 한국어를 세계로 보급하고 한글을 대체 문자로 보급하는 것도 분명 좋은 일이다.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본다면 말이다.

하지만, 더 긴급하고 중요하게 필요한 것은 바로 한국인들의 인식의 변화가 먼저 필요할 것이다.

인식을 변화하여 내실을 먼저 쌓은 후에야, 비로소 외실도 더 견고해지는 것은 아닐까.

 

'일상 나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식물  (0) 2020.10.21
Tech Savvy Senior  (0) 2020.10.19
비오는 날 밤  (0) 2020.10.17
  (0) 2020.10.16
  (0) 2020.10.15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