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이 많지 않다. 아니, 말은 많지만 듣는걸 더 좋아한다.
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게 재미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정말 다양하다.
같은 언어, 같은 지역, 같은 학문적 배경, 같은 직업적 배경 등을 가진 사람들도
모두 다 다른 생각을 한다.
다 다르다.
관점이 다 다르다.
심지어 일란성 쌍둥이들조차 다른 생각과 다른 관점을 가진다고 한다.
난 그래서 듣는걸 더 좋아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었다.
내가 '내적 관종'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
난 수다스러운거 같다.
말이 엄청 많은 것 같다.
하고 싶은 말도 많은 것 같고,
그냥 주저리 주저리 말하는걸 좋아하는것 같다.
꽃한테도 말하고,
새한테도 말하고,
사물한테도 말한다.
집안에 있는 프린터가 프린트를 해주고 나면,
항상 '수고했어 고마워'라고 말하며 프린터 옆을 툭툭 친다.
수고했다는 표현이다.
누가 보면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냥 그러고 싶다 .
프린터가 정말 나를 위해 수고했지 않는가!
말하는게 좋다.
하지만 듣는것도 좋다.
나는 그냥 소통하는게 좋은가 보다 .
개랑도 얘기하고 싶다.
고양이랑도 얘기하고 싶다.
새랑도 얘기하고 싶다.
가끔 우리집 발코니에 집 짓고 사는 거미들을 먹으러 오는 Noisy Miner (회색 몸빛의 노란 부리를 가진 새)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랑도 얘기하고 싶다.
이 친구가 밖에서 신나게 하루를 보내고,
해가 질 즈음 우리집에 와서 하루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면 좋겠다.
뜨거운 햇빛을 피해 나무 그늘에 드러누워 있는 고양이 친구를 발견할 때면,
느리게 껌뻑거리는 눈 인사 말고,
'안녕? 오늘 어때? 많이 덥지?' 라고 건네는 내 말소리에,
'응 많이 덥다. 그래서 내 츄르는?'이라고 답해주는 인사를 듣고 싶다.
남들은 모른다. 사실 비밀이다.
내가 관종일 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니, 확실히 맞는거 같다. 내적 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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